언제부터인가 문화는 모든 사람의 관심이 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삶이 그만큼 먹고 살만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지금 이순간에도 생계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지만,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사람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문화는 바로 이와 같이 생계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순간 폭발적인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딱 잘라 말히기는 그렇지만 88올림픽 전후가 그 분기점이 아니었나 싶다.
이는 문화를 취미가 아닌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첨병은 바로 대중문화다.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매스미디어 산업을 더욱 촉발시키게 마련이다. 이제는 보편화되었지만 뮤직비디오, 연예기획사, 캐이불방송, 프로스포츠산업 등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은 불과 20년 남짓에 불과하다.
스코트 래쉬는 이른바 문화경제학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골드 스미스 대학)의 문화연구소장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문화란 단순히 여가의 수준을 넘어 생산의 주축이 되고 있으며, 기존의 산업활동 또한 문화가 생성되는 과정을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초기의 투자비용(아이디어, 기획, 스타발굴, 육성 등)이 많이 드는 대신 수익은 크게 되는 문화산업의 구조가 전산업에 파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영국의 출판과 음반산업을 예로 들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우리의 영화나 음반산업을 보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러한 문화적 혜택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인데, 저자는 이를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겉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문화산업은 사실 자본주의의 논리가 가장 냉철하게 작용되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불평등이 문화에도 엄연히 존재 혹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현재의 문화산업에 대한 각광은 단순히 포스트 모너니즘 현상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탈조직화된 형태로 인식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보면 우리의 문화산업은 초창기 단계에 불과하다. 최근의 각광이 내실없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치닫고 있다고 하는 비평은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문화적인 삶이란 결국 남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스스로 인간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 아니겠는가?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객관적 특질은 무엇이고 이를 추진하고 변형하는 주체의 특징은 무엇인가. 푸코의「권력이론」, 하버마스의「의사소통이론」, 그리고 기든스의「구조화이론」에서 사상적 자원을 물려받은 스코트 래쉬와 존 어리는 이 책에서 후기현대사회에서경제와 문화가 접합되는 새로운 양식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서론 : 조직자본주의 이후
2. 이동하는 객체
3. 성찰적 주체
4. 성찰적 축적 : 정보구조와 생산체계
5. 축적되는 기호들 : 문화산업
6. 관리될 수 없는 공간 : 하층계급과 타격받은 빈민가
7. 이동하는 주체 : 비교 전망에서 본 이민
8. 탈산업적 공간
9. 시간과 기억
10. 이동, 현대성, 장소
11. 지구화와 지방화
12.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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