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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신 성령님


* 책을 읽으며 처음 든 생각… 추천의 글이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 걸까? * 제목은 ‘좋으신 성령님’, 부제가 ‘성경적 성령론과 파워 라이프’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책은 전체적으로 ‘살려주시는 성령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성경적 성령론’을 전반적으로 다루어주고 있지 않다. ‘파워 라이프’라는 것도 그렇다. 추천사 중에서 이것을 극찬한 내용이 나오지만(18p), 실재로는 7가지 항목을 12페이지에 걸쳐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그리 특별하고 새로운 것은 없다. 물론 성령론을 다룬 다른 책들에 비하면 그나마 실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차라리 책 제목을 ‘살려주시는 성령님’이라고 하면 가장 적당했을 듯… * 저자는 성령의 사역을 ‘성령 세례’라는 용어로 통합시켜서 사용하는 듯 보인다. ‘내주(內住)’도 세례요, ‘충만’도 세례이며(그러면서도 신학계의 주요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인 ‘충만’과 ‘세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도 않는다), ‘기름부음’도 세례다. 조직신학을 전공한 박사(몇 곳에서 이 부분이 소개/강조되고 있다)답지 않은 용어 사용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렇게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규명도 없고… 대신 그는 성령 세례를 ‘구분, 능력, 변화’라는 세 범주로 다시 설명한다. 구분은 구원과 관련되니 아마도 ‘내주’와 연관시킬 수 있을 것이요(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정작 본문에서는 구원이라는 신분과 사역을 위한 능력까지 포함시켜서 설명하고 있다), ‘능력’은 ‘성령의 은사’와 로이드존스 목사가 주장하는 ‘충만’과 연결될 것이며, ‘변화’는 ‘성령의 열매’와 연결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세 범주를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은(책 전체가 이러한 구분에 따라 구성되었고 그렇게 설명되고 있다) 과연 ‘장점’으로 보아야하는 것일까? 이미 있는 용어들은 통합하고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 ‘충만’을 ‘관계’라는 부분에 집어넣어서 ‘소멸’과 ‘훼방’과 함께 설명한다. 그런데 그 설명도 독특하다.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 ‘yes’하는 것은 ‘충만’, ‘no’하는 것은 ‘소멸’, 그리고 성령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것이 ‘훼방’이란다. 새롭고 독특한, 독창적인 해석인 건가? 아니면 다른 이들이 이런 주장을 새롭게 하는 있기라도 하는 걸까? 이렇게 의문시 되는 부분들이 종종 나온다. * 책을 다 읽고 든 생각… 이 책은 전에 읽었던 하용조 목사의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다]와 너무도 흡사하다. 말/글의 투조차도 비슷하다. 뭔가를 확신 있게 주장하는 것 같은데, 막상 중요한 것들은 슬금슬금 피해가 버리고… 짧은 문장(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장점이다)과 강한 확신(이것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끝에 느껴지는 ‘가벼움’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성령론을 다루는데도 그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가볍다’! 이것이 나의 ‘선입견’ 내지는 ‘부정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터무니없는 ‘악평’인 걸까? *****(읽으며 메모한 것들, 괄호 안의 숫자는 페이지)***** 1. 부흥을 위한 부흥은 없었다.(38) - 좋은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작년에는 ‘극성’ 수준이었던) ‘부흥’이라는 말, 그리고 그 말의 사용…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가 ‘부흥을 위한 부흥’을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닌지… 2. 아이스크림 하나가 사람을 살리다(63-) - ‘살리는 영’의 끝 부분에 거의 결론처럼 제시되고 있는 내용(예화)이다. 성경공부 모임에 아이스크림을 돌렸는데 어떤 사람은 울면서 먹고, 공부가 끝난 뒤 임신하고 입덧 때문에 며칠 동안 거의 음식을 먹지 못했는데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다며 눈물 흘리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 아이스크림이 사람을 살린 이야기는 어디에? 나는 누가 죽으려다가 아이스크림 때문에 살았다든가 하는 내용을 기대했는데, 그게 지나친 기대였던가? 이야기 끝에 내려진 ‘결론’, “성령님은 살리는 영이시다.” 뭐 아이스크림 먹은 이야기에서 살리는 영이신 성령님을 발견하면 잘못된 거라고 할 순 없지만… 왠지 과대 포장한 선물을 풀어본 후에 느끼는 배신감 같은 걸 느끼게 된다. 3. 성령님을 ‘거룩한 영’이라고 할 때 성령께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이다.(67) - 1부 살리는 영의 chapter 3의 제목이 ‘거룩한 영’이다. 거기 할애된 페이지는 67-68페이지. 거룩에 대한 단어(‘카다쉬’ 하나) 설명, 그 다음에 생명과 관련된 구절 세 개, 마지막으로 생명의 약속과 보장, 결론은 “거룩한 영인 성령님은 살리시는 영이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성령께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는 것이 ‘생명’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정의는 또 뭔가! 어찌 성령님이 생명 부분에서만 구별되신단 말인가! ‘살려주는 영’을 강조하기 위한 편법이다. 살려준다는 것을 그렇게도 강조하고 싶다면 굳이 성령님의 그 거룩하신 ‘거룩’까지 들먹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4. 성령 세례란 ‘성령께서 함께하시므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뜻한다.(82) - 난 어디서도 이런 ‘독창적’인 정의를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 주장이요 정의인 걸까? 저자의 독특한 정의가 아닌가 싶은데… 5. 지난 5월 8일과 9일 이틀간,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 1층에서 ‘내 생애 가장 귀한 선물’이라는 주제로 전도 집회가 있었다. 디너쇼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자녀들이 부모님을 초청해 마련한 자리였다. … 그런데 그날은 사정이 달랐다. 왜냐하면 청중이 평소 나를 잘 알고 있는 교회 어르신들이 아니라,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호텔에서 진행하는 디너쇼인 줄로만 알고 오신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 디너쇼인 줄로만 알고 오셨는데, 설교한다고 화내지 않게 해주십시오. … 사실 어찌 보면 가장 강력한 성령님의 역사가 필요한 모임은 전도 집회이다. … 전도 집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성령 충만해야 한다.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해야 한다.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85-) - 전도 집회인가? 디너쇼인가? 왜 거기 오신 어르신들은 그 모임을 단순한 ‘디너쇼’로만 알고 계셨을까? 왜 설교자는 청중이 화낼 것을 두려워하여 ‘간절히’ 기도해야만 했을까? 성령에 민감하고 성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전도 집회를 준비하면서, 실수로 그것이 ‘디너쇼 형식의 전도 집회’가 아닌 ‘디너쇼’라고 광고했던 것일까? 부모님이 구원 받기를 원한 자녀들이 ‘전도 집회’인 것을 알면서도 ‘디너쇼’라고 말했기 때문일까? 저자는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알고 ‘디너쇼인 줄로만 알고 오셨는데, 설교한다고 화내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을까? 이런 ‘오해’(?)는 의도적인 것이 아닐까? 왜 처음부터 ‘디너쇼 형식의 전도 집회’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오시지 않을까 봐? 오시게 하기 위해서 ‘디너쇼’라고 하고, 화내실까봐 간절히 기도하고… 전도를 위해서는 성령께서도 의도적인 속임을 용인하시거나 적극적으로 그렇게 추진하라고 인도해 주시는 걸까? 목적이 좋으면 수단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일까? 성령님께서도? 이런 과정을 ‘속임’이라고 보고 못마땅하게 느끼는 게 오히려 잘못인 걸까? 6. 감동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신이 삼손 안에서 움직이고 계시며, 또한 삼손에게 움직이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 후 삼손은 우여곡절을 겪는 인생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분된 인생을 살게 된다.(90) - 정말? 삼손의 인생이 정말로 ‘항상’ ‘구분된 인생’이었다고? 내가 알고 있는 삼손과 다른 삼손이 또 있었나? 아, 그건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삶은 변화되지 않았다. … 삼손은 하나님의 신이 임하므로 놀라운 능력을 부여받았고, 모든 사람이 볼 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이 뚜렷이 구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이방 여인을 사랑해서 가까이 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91)”고 저자 자신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왜 그가 “구분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는 거지? 직분적으로 구분되었지만, 삶은 구분되지 못했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자의 결론. “삼손에게 일어났던 모든 긍정적인 사건들뿐만 아니라,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들까지도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분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했다.(92)”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이라고?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여전히 구분되었다고? 하!~ 7. 이처럼 성령님은 ‘구분의 영’이시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분하신 것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분하신다.(97) - 저자는 이 부분에서 용어를 혼용/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구분된 것과 우리가 그리스도인 된 것이 같은 부류의 역사라고 볼 수 있는가? 그 근거는? 게다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신분)과 사역 사이도 바르게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신분과 사역 둘 다 성령님의 사역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둘은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 8. 한글 성경에서 ‘심판’이라고 번역된 말은 헬라어 성경에서는 두 가지 단어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영원히 죽느냐 영원히 사느냐’의 구분을 짓는 심판을 말할 때는 ‘크리시스’라는 단어를, ‘어떤 상을 받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심판을 말할 때는 ‘베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베마’는 상을 주기 위해서 구분하는 ‘시상대’라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99) - 음… 이렇게 구분되는군. 크리시스와 베마라… 9. 은사란 ‘살리는 일을 잘 하라고 주시는 능력’이다.(108) - 은사의 목적이 살리는 것? 교회의 덕을 세우라고 주신 것 아니었나? ‘그게 그거’라고? 정확성은? 114-115페이지에서는…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사는 유익하다는 것이다. 은사를 받은 개인에게도 유익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데 유익하다.” 그러면서 고전 14:12의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도 인용한다. 그런데 몇 줄만 더 내려오면 “그 은사를 잘 사용하면 개인도 살아나고 공동체도 살아나고 그 공동체를 통해서 누군가가 살아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은사는 사람을 살리라고 주시는 성령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오락가락… 10. 성령의 은사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은사를 받는 사건이 일어난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되면 성령님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 관심이 먼저이든 사건이 먼저이든 순서에 관계없이 공통적인 것은 성령의 은사에 대한 ‘관심’과 성령의 은사가 임하는 ‘사건’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즈음 성령의 은사와 성령님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면 기대해도 좋다. 성령님은 어떤 사건을 일으키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생각에 관심을 불어넣어 주신다.(115-) - 후자는 accept. 전자는? 관심만 가지면 다 받나? 성령님이 주셔야지! 물론 관심도 없는 사람은 관심을 가진 사람만 못하긴 하겠지. 그렇다고 ‘틀렸다’고 하기도 좀 그런… 어쨌든, 설교에 써먹기는 참 좋은, 귀에 착 달라붙는 표현이다. 11. 이러한 능력이 바로 ‘능력 행함의 은사’다.(133) - 사도행전 5:1-10에 나온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는 사건을 다루면서 그것이 베드로에게 주어진 은력 행함의 은사라고 말하는데, 조금 적절하지 않은 듯한 느낌. 오히려 이적을 행하는 것이 그에 더 가깝지 않을까? 베드로의 경우는 ‘영분별’에 가깝지 않을까? 하지만 그 이후에 제시하는 바울과 엘루마 사건(행 13:6-12)이나, 바울이 빌립보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행 16) 등은 옳다. 그런데 그 끝에 또 “능력 행함의 은사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은사이다.(134)”라고 한마디 한다. 왜 그렇게 이 ‘살리는 일’에 집착하는 걸까? 책 제목이 ‘살리는 영이신 성령’도 아닌데… 12. 예언을 듣게 되면 숨은 죄에 대해 책망을 듣게 되며, 그 결과 사람들이 참된 예배자가 되어 하나님께 경배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137) - 고전 14:24-25에 대한 설명이다. 이 구절을 여러 번 봤을 텐데도 이런 쪽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놓치고 있던 부분… 13. 어떤 소리로 들리든지 간에 방언과 관련하여 알아 두어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동일한 음이 반복해 계속 나올지라도 방언으로 기도하는 내용은 다양한 것이다. 둘째, 단순한 음으로 들리는 방언과 유창하게 들리는 방언은 결코 수준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 셋째, 방언은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147) - 둘째, 셋째는 통과, 첫째는… 글쎄… 이 글을 보면서 ‘빵상’ 아줌마가 생각났다. 외계어로 노래한다고 같은 단어만 줄줄 말하다가는, 해석해보라니까 상당히 길게 다양한 내용을 말했던… ‘이 짧은 말에 이렇게 긴 내용이?’라는 자막이 떠올랐던… 여기서 제시되는 대로라면 ‘빵빵빵’ 세 마디만 했어도 두 세 문장이 포함될 수 있다는 이야긴데… 어디서 나온 기준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14. 우리의 삶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탁월성’이다.(168) - Amen!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앞에서의 ‘충성’이라고 하고 싶다. 성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충성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충성했느냐가! 15. 교파와 교단, 선교단체에 따라 ‘성령 세례’라는 용어를 서로 상이하게 사용한다.(201) - 라고 하면서 ‘구분, 능력, 변화’ 중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그렇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단지 ‘강조점의 차이’일 뿐일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듯… 오랜 시간 동안 해결할 수 없었던 무게 있는 문제를 너무 가볍게 풀어버리는 것 아닌가? 정말 문제가 이렇게 단순한 것일까? 16. 성령 세례는 우리가 이행해야 할 것에 대한 명령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야 할 사건에 대한 약속의 선포이다. 성령 충만과 성령 소멸이 명령법으로 되어 있는 반면에, 성령 세례와 관계된 모든 성경 구절은 명령법이 아니라 직설법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성령 세례가 우리의 상태에 따라서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성격의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또한 일어나야만 하는 사건이라는 의미이다.(203) - 정말 그럴까? 하긴 저자의 정의처럼 성령 세례가 ‘성령께서 함께하시므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뜻한다(82)면야… 일단 ‘성령 세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뜻풀이’가 전혀 다르니 뭐라 할 수도… 17. “성령과 불로”라는 표현은 이런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불같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사도행전 2장 3절에서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라는 표현이 나온다.(207) - 이건 해석이 크게 두 가지다. 저자처럼 ‘성령 세례 = 불세례’로 보는 경우, 그리고 그 둘을 별개의 것으로 보되 불세례는 사실상 ‘심판’을 가리킨다는 보는 경우. 나는 후자를 지지한다. 전자를 주장하는 경우 ‘불의 혀’를 많이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정작 본문은 ‘급하고 강한 바람’에 대한 묘사인데다가 ‘불의 혀’가 아니라 ‘불의 혀 같이’라고 되어 있다. 표현이 비슷하다고 무조건 들이대면 곤란하다. 18.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은사들을 체험하는 것’을 ‘성령을 받는다’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211-) - 에베소에서 있었던 일(행 19:1-7)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 또한 생전 처음 본다. 게다가 ‘자연스럽게’까지? 색다른 해석이 많이 나온다. 그게 다 틀렸다고 하기도 그렇고 다 맞다고 하기도 그런… 19. 230페이지에서 사울에게 성령이 임했던 것을 소개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이제까지 유사한 경우에는 꼭 등장했던 ‘구분, 능력, 변화’를 가져오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저자의 이제까지의 주장에 근거한다면 사울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임했으니 그건 ‘성령 세례’여야 한다. 20. 역시 주도권은 성령님께 있다. 조작해서도 안 되고, 인간적인 술수를 써서도 안 된다.(235) - Amen!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이런 기준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 같지가 않아서… 21. 성령님과 우리의 관계에는 성령 충만, 성령 소멸, 성령 훼방이 있다. 성령 세례가 약속 선포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반면에, 성령 충만과 성령 소멸은 명령으로 되어 있으며, 성령 훼방은 설명으로 되어 있다. ‘성령 충만’이란 성련님의 음성에 “예”라고 대답하며 순종하는 상태이고, ‘성령 소멸’이란 “아니오”라고 말하면서 불순종하는 상태이며, ‘성령 훼방’이란 성령님의 존재 자체를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236) - 글쎄…내가 과문(寡聞)한 탓일까? 이런 설명들이 너무나 생소하게 보이니… 성령 충만은 명령형이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가 아니라 태도가 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은혜다. 그러나 태도가 된다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다.(239-) - 성령 세례가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반면 성령 충만은 선별적이라고? 어째 구도가 내 것과는 정반대인 듯… 명령형이라는 것이 선별적이라는 것의 근거로 사용(252p에서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될 수 있는 것일까? 22. 내가 성령님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령님 안에 들어가서 성령님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다.(240) - 호! 또 생소한 표현! 내가 성령님 안에 들어간다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은 분명히 있다. ‘성령이 내 안에’도! 그런데 ‘내가 성령 안에’라는 말은 보지 못했던 거 같은데? “성령님이나 예수님이나!”라고 말하면… 23. 그때에 우리가 거부하지 않고 “예”라고 대답하며 순종하는 것이 성령 충만이다. 쉽게 말하면 성령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다.(240) - 응? 성령 충만은 수동태(239)라며? 어째 능동태로 표현하는 건가?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은 ‘순종’이다.(244) - 이 표현과 ‘성령 충만 = yes하는 것’이라는 표현은 분명 그 뉘앙스가 다르다! 전자는 수용 가능하나(순종) 후자(yes)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24.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19절에서는 감사하지 않는 삶을 ‘성령 소멸’과 연결시킨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삶이다. 성령 충만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이라면, 성령 소멸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삶이다.(247-) - 감사(18절)와 소멸(19절)을 연결시키는 식의 해석이 정당한가? 소멸에 대한 내용은 앞 절(18절)이 아니라 뒷절(20절)에 걸치는 것이 아닌가? 256페이지에 다시금 소멸을 다루지만 거기서는 ‘감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25. 성령 훼방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한 범죄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 훼방죄를 짓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언제나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258) 성령을 훼방한다는 말의 직접적인 의미는 성령님을 모독한다는 것이다. 즉, 성령모독죄를 말한다.(259) 31절에 언급된 ‘훼방한다’는 말은 32절에 쓰인 ‘거역한다’는 의미와 동일한 뜻인데, 그것은 존재 자체를 믿지 않고 모독한다는 뜻이다. 즉, ‘성령을 훼방한다’ 또는 ‘성령을 거역한다’는 말은 성령님 자체를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성령님을 모독한다는 것이다.(262) 성령훼방이란 바리새인들이 성령님의 존재와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귀신의 역사로 돌리면서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처럼, 성령님의 존재 자체와 역사를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263)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지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264)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동일한 죄이다(265)- 그러면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령 훼방죄를 짓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영(靈)이 죽어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성령님을 감지할 것이며, 감지하지 못하는 성령님을 훼방까지 할 수 있을까? 성령 훼방죄를 바리새인과 연결한 것은 옳았다. Hermann Reddelbos가 그의 마태복음에 대한 짤막한 책에서 그것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바리새인이 성령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라고 몰아붙인 것이지, 성령님의 존재와 역사(役事) 자체를 부인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행해진 성령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고, 그것이 성령 훼방죄라고 리델보스가 말한다. 사두개인이라면 몰라도 바리새인이 성령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불신이 성령 훼방죄라는 것도… 26. 파워 라이프 3. 성령님을 언급하라. 성령님에 대해 말을 많이 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신다.(274) - 신기한 주장. 말하면 된다고? 그 성경적 근거는? 그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아주 중요한 비밀”(275)이라면 왜 성경은 그 사실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을까? 27. 성령님의 역사는 점염성이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 안에서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려면 성령 충만한 사람 옆에 있는 것이 좋다. 활활 타는 불이 다른 곳으로 자꾸 옮겨 붙듯이 불같은 성령님은 자꾸만 옆으로 옮겨 붇는다.(278) - 정말 조직신학 박사님이 한 말이 맞는 건지? 성령을 덤으로라도 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불이 옮겨 붙는 것처럼 ‘불같은’ 성령님도 옮겨 붙는다고? 28. 그렇다. 태도였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 불순종하지 않고 순종하는 태도, 낙심하지 않고 도전하는 태도, 나를 드러내지 않고 성령님을 드러내는 태도,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 약속을 믿는 태도! 성령님은 태도를 보신다. 성령님은 태도가 된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282) - 동의!
성령님이 원하시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태도이다!

성령님에 관한 책은 많다. 하지만 냉철한 신학과 파워 있는 현장이 잘 어우러져 있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은 신학과 현장이 만나는 책이다. 그는 조직신학을 전공한 신학자이면서 성령사역 현장에서 땀을 흘린 목회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잘 몰라 사모하지 못했던 성령님에 대해 명료하고도 따뜻하게, 역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추천사-하용조, 김명용, 홍성건, 박종렬, 김종인, 손한기
prologue - 성령님께 사로잡히다

제1부 살리는 영
1장 보혜사
옆에 계시는 분 / 떠나지 않으신다 / 잘못된 길을 갈 때도? / 물질이 아니라 인격 / 성령께서 95년 세월을 꺾으시다 /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방법 / 말씀의 매개체 / 거룩한 성전

2장 살리는 영
살리는 방법 / 회복의 영 / 아이스크림 하나가 사람을 살리다 / 사람 살리는 일에 목숨 걸면

3장 거룩한 영

4장 진리의 영
진리와의 만남 / 진리인 말씀 따라서

5장 연합의 영
무주구천동에서 춤을 추다 / 하나 됨 / 시간과 공간의 간격을 넘어 / 획일화가 아니라 진정한 하나 됨

제2부 성령세례의 세 가지 차원
1장 구분(separation)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의 전도집회 / 구분됨 / 구분됨의 증거 / 메시아의 증거 / 구분됨의 조건 / 두 종류의 사람 / 인 치심 / 표정과 피부색이 바뀐 남자 / 구원의 확신

2장 능력 부여(empowering)
몽골에서의 크리스마스 / 선물 / 가치는 같고 역할은 다르다 / 은사는 좋은 것이다 / 관심과 사건의 상관관계 / 은사와 천부적인 재능의 관계 / 지혜의 말씀의 은사 / 지식의 말씀의 은사 / 믿음의 은사 / 병 고침의 은사 / 능력 행함의 은사 / 예언의 은사 / 영들 분별함의 은사 / 방언의 은사 / 방언 통역의 은사 / 섬김의 은사 / 가르침의 은사 / 권위의 은사 / 구제의 은사 / 다스림의 은사 / 긍휼 베풂의 은사 / 은사 발견법

3장 삶의 변화(transformation)
서귀포에서 일어난 성령 사건 / 열매는 성품이다 / 하나님의 형상 회복 / 반드시 변한다 / 패키지 변화 / 평생 변화 / 성품과 은사 / 예수님 닮아가기 / 사랑 / 희락 / 화평 / 오래 참음 / 자비 / 양선 / 충성 / 온유 / 절제

제3부 성령세례의 다섯 가지 성격
1장 용어 사용의 차이에 따라 이해가 달라진다
부흥회 때의 혼돈스러움 / ‘성령세례’라는 용어 사용의 차이

2장 성령세례는 약속이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불같은 성령으로 / 운명공동체 / 오순절 성령세례

3장 성령세례는 기름 부으심의 사건이다
다윗에게 일어난 세 가지 사건 / 메시아

4장 성령세례는 선교와 관련 있다
종말론적 삶을 사는 사람들 / 성령세례와 복음 전파

5장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사건이다
하나님의 사건 / 내가 아니라 성령님입니다

제4부 성령님과의 관계
1장 성령충만
성령충만 / 성령충만한 사람의 특징 / 예배자 / 감사하는 사람 / 순종의 사람 / 세상 속으로 / 성령충만은 명령이다

2장 성령소멸
성령소멸 / 성령소멸에서 성령충만으로 가는 길

3장 성령훼방
성령훼방 / 용서받지 못하리라 / 성령을 훼방하는 죄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 / 성령훼방과 성령소멸 / 성령훼방은 설명이다

제5부 파워라이프: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삶
1장 파워 라이프를 살라
파워 라이프 1. 사람 살리는 일에 목숨을 걸라 / 파워 라이프 2. 죄를 회개하라 / 파워 라이프 3. 성령님을 언급하라 / 파워 라이프 4.말씀을 가까이 하라 /파워 라이프 5. 기도의 무릎을 꿇어라 / 파워 라이프 6. 성령충만한 사람 옆에 있어라 / 파워 라이프 7. 현장으로 들어가라

epi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