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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함박눈 따라서 갔네

법정 스님의 애송 선시집,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때, 차분하게 보면 좋을 듯 합니다. 내용중에서, - 꽃은 그때 그곳에서 모든 것을 내맡긴다 : 꽃은 묵묵히 피고 묵묵히 진다/다시 가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기쁨이/ 후회없이 거기서 빛나고 있다.- 구름과 달로 찾아온 손님 : 밝은 달은 촛불이요 벗이어라/흰 구름은 자리가 되고 또한 병품이어라… 흰구름 밝은 달을 손님으로 맞으면/ 도인의 앉은 자리 이보다 나을까.- 봄은 가도 꽃은 머문다 : 바라보니 산에는 빛이 있고/귀 기울이면 소리 없이 흐르는 물/봄은 가도 꽃은 남고/사람이 와도 새는 놀라지 않더라.- 초옥 : 초가는 낡아 삼면의 벽이 없는데/노스님 한 분 대평상에서 졸고/석양에 성긴 비 지나가더니/푸른 산은 반쯤 젖었다.- 하늘에 구름이 깨긋하니 : 네 바다의 물결이 고요하니/용의 잠이 편안하고/ 하늘에 구름이 깨끗하니/학이 높이높이 날도다.- 고향에 돌아와 : 삼십년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백발의 이웃 노인/내 이름을 묻는다/ 어릴 적 이름 알자/서로 눈물짓나니/푸른 하늘 바다 같고/달은 삼경이어라.- 고요의 힘 : 누구든지 잠시 동안 고요히 앉으면/칠보탑을 세우는 것보다 뛰어나다/보탑은 언젠가 티끌로 돌아가겠지만 한 생각 맑은 마음은 정각을 이룬다. 산이야 나를 좋아할 리 없것만 : 산이냐 나를 좋아할 리 없건만/내가 좋아서 산에 살지/한 산중에 오래 머물다 보니/쓸데없는 인연들이 나를 귀찮게한다.

법정 스님의 에세이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빛나는 언어의 결정(結晶)들 좋은 시를 읽고 있으면 피가 맑아지고 삶에 율동이 생기는 것 같다. 시는 일용의 양식 중에서도 가장 조촐하고 향기로운 양식일 것이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시를 무척 좋아했다. 새벽에 깨어 시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촛불 아래에서 시를 읽으며 하루를 정리하고는 했다. 좋은 시를 만나면 몸에 물기가 도는 것 같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고, 지인들에게 편지와 엽서를 보내면서 정갈하게 써내려간 선시 한 편을 덧붙이기도 했다. 에세이에도 시를 자주 인용했다. 어떤 경우에는 에세이 한 편을 오롯이 시에 바치기도 했다.법정 스님은 시 중에서도 특히 선시(禪詩)를 좋아했다. 선시는 불가의 가르침과 선승의 깨우침을 한시의 형식을 빌려 표현한 불교문학의 한 형태다. 몇 마디 짧은 구절에 비수처럼 번뜩이는 생의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법정 스님은 시(詩)를 ‘말씀 언(言)’ 변에 ‘절 사(寺)’로 해자하면서 ‘절에서 쓰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수행을 거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언어의 결정(結晶)이라 여긴 것이다.이 책은 법정 스님이 좋아했던 선시와, 에세이에 인용했던 선시들을 선별하여 모은 것이다. 정제되고 응축된 언어와 상징 속에 담겨 있는 깊은 울림을 체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시도 좀 읽읍시다

거기 그 자리에 있으라
꽃은 그때 그곳에서 모든 것을 내맡긴다|구름과 달로 찾아온 손님|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우물 속의 달을 보고|격양가|고요 속에 드러나는 것|매화 한 가지에 새 달이 돋아오니|서둘러 청산으로 돌아오너라|봄은 가도 꽃은 머문다|약초 캐는 사람|두 선객에게|흰 구름 걷히면|능엄경을 읽고 나서|자고 일어나 차를 마시니|욕심이 없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산유화|적적하고 고요해서 아무 일 없으니|그림자를 보고|그 절은 어디 있는가|초옥|산중에 무엇이 있는가|자연은 스스로 고요한데|외줄 거문고를 그대 위해 퉁기노라|가사와 바리때로 살아갈 만한데

깊은 산속 오두막 한 채
다선일미|구만 리 장천에|한 연못의 연잎으로|이름 때문에 숨어 살기 어려워|변각사에 올라|스스로 비웃음|다섯 이랑 대를 심고|창에 가득한 달빛 베고 누웠으니|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날카로운 비수를 빼어 들면|하늘에 구름이 깨끗하니|누더기 가슴 비었거니 무슨 생각 두랴|산중인|산거|봄 구경|배꽃 흩날려|산당의 이슥한 밤|답인|산거|벗을 기다리며|날마다 산을 봐도|청산은 나를 보고|벽이 무너져 남쪽 북쪽이 다 트이고|4행시

누구나 한 번은 저 강을 건너야 하리
달이 일천 강물에 비치리|고향에 돌아와|누가 너이고 누가 나인가|창 밖에 흰 구름만|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매화 가지를 꺾다가|이 몸 벗고 고향으로 돌아가네|한 덩이 붉은 해가 서산으로 진다|죽은 스님을 슬퍼함|표주박 하나|가을밤|원선자를 보내고|타는 불 속 거미집엔 고기가 차 달이네|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내 몸 본래 없었고 마음 또한 머문 곳 없으니

꽃은 뜻이 있어 사람을 보고 웃네
눈길을 걸을 때|선정은 금강의 투구|마음속의 가시덤불 베어버리라|고요의 힘|저녁 종송|인연 따라 거리낌 없이 사니|항상 평등한 마음을 지니라|참다운 공양|낙가산 찾는 이에게|산 밑의 우물|별장|고요한 밤 초암 안에서|온 누리에 봄이 가득하리|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꽃은 뜻이 있어 사람을 보고 웃는데|부처니 중생이니 모두 다 헛것|사람마다 한 권의 경전이 있네|해는 서산에 기울고|산이야 나를 좋아할 리 없건만

수록 시를 발췌한 법정 스님의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