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차이라는 것이 집요한 것이어서 여행 방식과 내용에서도 곧잘 나타나고는 한다. 대개 여성들의 여행은 약간 부티가 나면 더 좋은, 깨끗하고 안전하면서 편안한 숙소, 결코 커피와 빵이 빠지지 않는 맛집, 전기와 인터넷이 없으면 안되고 쇼핑도 적당히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만 하는 것 같다. 그리고는 뭐 풍경이 어쩌니 자유가 어쩌니 그때부터 이어지는 세부 묘사는 일상 수다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남자들과는 완전 다른 개념.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르다는 것. 그리고 남자인 나는 여성들의 그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 책도 마찬가지. 위에서 열거한 기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평소대로라면 몇 쪽 읽다가 집어 던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완전 다른 분위기. 나는 홀딱 빠졌다. 신새벽에 일어나 혼자 책을 읽으며 낄낄 거리는 것이 벌써 며칠째. 그야말로 정신없이 읽었다.
그동안 여성들의 여행기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은이가 글쟁이인 이유도 있는 듯 하다. 똑같은 이야기를 어찌 그리도 재밌게 풀어 내는지. 다큐 보다 유머가 한 수 위인 걸 나는 오늘 분명히 알았다. 웃긴 것, 재밌는 것이 최고다.
또 있다. 웃기고 재밌는 것, 그것 만이 전부는 아니다. 여행 작가, 그녀는 프로이기 때문. 책을 읽고 있는 독자를 어느새 현지 여행자로 만들어 버리는 능숙한 솜씨. 마치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듯한 생생함. 매의 눈으로 무엇 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 역시 프로는 아름답다.
다른 나라의 어떤 여행자에게도 꿀리지 않는 당당함도 좋다. 그것은 다년간 지구촌 곳곳을 누빈 경험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일단은 유창한 언어 실력 때문은 아닐까 싶다. 영어 뿐 아니라 일본어까지 자유롭게 구사하는 능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듯. 역시 언어가 되야 여행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 같다.
하나가 더 있다. 500쪽 가까운 적지 않은 분량에서 문화유적에 대한 언급은 달랑 몇 쪽 뿐. 세계문화유산인 앙코르 와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그마저도 자세한 설명은 없다. 대충 뭉개고 지나가는 분위기. 그런데도 밉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 현지 문화에 대한 존중이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둘러보고 지나치려던 곳에서 받은 충격을 그냥 흘려 버리지 않고 곧바로 반성하고 공부해 다시 살피려는 노력은 존중이 없다면 나오지 않는다. 이후 앙코르 와트에 대한 단행본까지 냈고.
나는 벌써 10년도 훨씬 더 전에 "여행은, 현지 지역문화에 대한 존중!"이라는 철학적 정의를 내린 바 있다. 남성인 내가 결코 동화되기 어려운 여성이 쓴 이 여행기에 이렇게 흠뻑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녀에게 바로 이 지역문화에 대한 존중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존중이 있어야 공부하고 배우려는 노력이 있을 것이고 알고 보아야 바로 보이고 제대로 느끼며 한층 더 성숙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얘기를 구태여 다시 또 언급해 본다. 여행갈 때 존중은 반드시 챙겨가야 할 필수품이다.
이쯤에서 지난 30여 년 간 마누라를 밥까지 굶겨가며 오로지 탑 하나 달랑 서있는 폐사지로 끌고 다녔던 나를 반성한다. 남녀의 차이, 인정해야 한다.
글쟁이의 여름 낭만? 좌충우돌 생계형 배낭여행!
노플랜 사차원 유럽 여행 등으로 읽는 재미 가득한 여행서를 선보인 정숙영의 인도차이나 여행기. 여행 이야기지만 관광지나 휴양지 정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놀며 일하기 위해 번역 일감을 들고 오지에 가까운 마을을 찾아간 생계형 배낭여행 이기 때문이다. 히피들의 느긋한 에너지가 가득한 태국 빠이, 저녁 6시면 칠흑 같은 어둠에 묻히는 라오스 씨판돈, 로컬버스 속에서 현지인들의 구경거리가 된 캄보디아 라따나끼리 등 기대를 품었던 글쟁이의 여름 낭만 대신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Prologue. 액과 액땜은 구별하며 살자
# Thailand, Bangkok
챔피언을 만났는데 자랑스럽지가 않아
통로로 검색해봤자 방콕은 안 나온다
2009년은 서울도 방콕도 원더걸스
네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그치?
# Thailand, Pai
인생이 컴퓨터냐 사양 따지게
빠이 고갯길의 미하일 슈마허
일요일 아침엔 늦잠이 제격
하늘과 별과 정전과 단수
Are you Ting Tong?
빠이의 개집 짓는 아저씨
행복, 아직 내 것은 아닌 것 같은
# Laos, Vang Vieng & Si Phan Don
침묵과 푸름과 소의 나라로 가다
방비엥, 여긴 어딘가
짝짝이 군에 대한 짧은 관찰 보고서
부탁이야 말 좀 해줘, 응?
동물의 왕국을 본의 아니게 침략하다
전기가 없는 마을
전기가 없는 마을의 아이들
# Cambodia, Ratanakiri
인도차이나에서 제일 가난한 여행자
도둑놈의 마을 스툰 트랭
나에게도 스카우터가 있으면 좋겠다
난데없는 행복은 그 나름대로 고민거리
라따나끼리 식 땡땡이
썸말로이
버스와 각목과 아이와 새가 있는 풍경
# Vietnam, Ho Chi Minh & Da Lat
나의 달콤쌉싸름한 호치민
나는 좋은 사장이야
특정 업체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만
미스터 달랏 한 바퀴
워킹 홀리데이
글로벌 스탠더드
사람이 변하면 죽을 징조라던데
# Cambodia, Siem Reap
나는 과연 무엇을 알고 있었나
나는야 자연 재해의 여왕
서 바라이의 아이들
# Thailand, Krabi
우리나라에 한번 와 보세요
내 행복의 최소 공약수
카테고리 없음